기독교윤리는 ‘기독교인의 삶 또는 행위가 어떤 것이며, 어떤 것이어야 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받습니다. ‘기독교인 됨’과 ‘기독교인으로 살아감’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기독교인 됨’은 한순간의 일회성 사건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면서 기독교인이 되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 즉 기독교인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기독교인의 삶이란 어떤 특정한 행위를 한다거나 어떤 특별한 규칙과 계율을 지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이 특정한 행위를 하거나 특별한 계율을 따르는 것으로 정의된다면, 기독교인의 삶을 다루는 기독교윤리는 이미 주어진 답에 얼마나 더 가까운가를 평가하는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기독교윤리는 세 가지 차원을 가집니다. 기술윤리의 차원, 규범윤리의 차원, 메타윤리의 차원입니다.
첫째, 기독교윤리는 경험적 사실로서의 윤리적인 것 또는 현실적 도덕을 가리키는 기술윤리의 차원이 있습니다. 기술윤리에서 ‘기술’이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서술함’이라는 뜻입니다. 성서나 기독교 역사에 등장하는 몇몇 행위규범들이 그 예가 될 수 있는데요. 그 규범들은 특정 시공간의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한정된 것으로, 모든 시공간의 모든 행위자에게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둘째, 기독교윤리는 현실적 도덕에 매몰되거나 한정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는 규범윤리의 차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가 당시 관습에 따른 행위규범으로 화석화된 안식일 ‘법’을 비판하고 위반한 사건이 있습니다. 예수는 현실적 도덕으로서의 안식일 법을 넘어서는 안식일의 ‘본래 정신’을 회복시켰습니다. 기술윤리의 한계를 극복한 규범윤리를 제시한 것이지요.
셋째, 기독교윤리는 현실적 도덕을 넘어서는 규범윤리의 정당성의 근거를 기독교 신앙에 두는 메타윤리의 차원이 있습니다. 메타윤리에 의하면, ‘어떤 행위가 옳다는 것은 옳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윤리는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윤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입니다. 기독교윤리의 독특성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윤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별개로 놓지 않고, 이 둘을 연결합니다.
기독교윤리는 기독교인의 삶을 다룰 때 성서뿐만 아니라 통찰력 있는 여러 자료를 사용합니다.
첫째, 성서는 기독교인의 삶과 그 근거를 모색하고자 할 때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성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현재 상황과 거리가 있는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이 직면하고 선택해야 하는 문제들에 대한 모든 답을 성서에서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또한 같은 문제라 할지라도 성서를 오늘의 상황에 곧바로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윤리적인 문제에 있어서 자급자족적이라기보다는 ‘우선적인’ 위치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기독교 전통도 기독교윤리의 중요한 자료입니다. 이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기독교 전통에서 기독교인의 삶의 범례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성숙한 윤리적 선택을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셋째, 기독교윤리는 인간의 삶과 경험을 연구하는 제반 학문의 연구(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를 자료로 사용합니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지역과 집단과 개인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인간의 삶과 경험을 알아야 기독교인의 삶을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